지혜칼럼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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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택 칼럼 - < 종 교 >우리는 보통 여러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정치나 종교 얘기를 하지 말라고 경고 한다. 이유는 사람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추구하는 가치가 각각 다르기에 생각이 같을 수 없고 그러기에 다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가 하려고 하는 얘기는 어느 특정 종교를 선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종교와의 관계를 얘기하려고 하는 것이다. 즉 인간에게 종교가 필요하냐 필요하지 않느냐 하는 얘기다. 1950년대 필자가 어릴적 초등학교시절 얘기다. 뜬소문이었지만 고향 읍내에 전방에서 군인들이 물을 잘못 먹어서 문둥병(한센병)에 걸렸고 그 사람들이 동네에 많이 들어왔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들이 어린애들을 죽이고 간을 빼먹는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래서 그 때부터 어린 나이지만 죽음을 생각하게 됐다. '그들이 나를 죽이고 간을 빼 먹는다면, 그럼 나는 죽어 땅속에 묻히게 될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는 상관 없이 땅위에서는 무한한 시간이 흘러갈 것이다. 그렇다면 끝없이 흘러가는 그 시간의 끝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됐고, 그 무한의 시간을 생각하게 되면 정신이 아찔해지고 두려워지는 것이다.' 끝없이 끝없이 흘러가는 무한한 시간의 끝은 무엇인가가 나를 두렵게 했고 힘들게 했다. 그것은 땅속에 있는 내가 의식을 하던 의식하지 않던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 때부터 나 자신의 존재를 생각하게 됐고, 절대자를 생각하게 되었으며 종교를 생각하게 됐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어린 나는 그런 상황이 괴롭도록 두려운데, 같이 앉아 식사를 하는 부모형제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듯 맛있게 식사만 잘 하고 있는 것이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세상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열심히만 살아 가고 있다. 생각도 고민도 하지 않고 종교 같은 것은 있어도 없어도 되는 것처럼, 필요에 의해서 선택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마치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고르듯이, 맘에 들지 않으면 다른 것으로 바꾸기도 하고 또 구매하지 않아도 되는 것 처럼 생각도 한다.많은 종교중 어느종교를 선택할 것이냐, 또는 종교를 믿으면 복을 받는다는 등의 문제는 이차적인 문제다. 종교에 대해서 논쟁하지 말라고 하는 얘기도 바로 어느 특정 종교에 대해서 얘기할 때에 하는 얘기다. 문제는 종교가 필요하냐 필요하지 않느냐의 얘기다. 그런데 겸허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간의 존재를 생각할 수 있고 죽음을 생각할 수 있으며 무한의 시간과 공간을 생각할 수 있다면, 인간은 겸허해 질 수밖에 없고 그래서 종교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 된다. 물론 종교를 과학적으로 분석 설명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해서 또한 종교는 필요 없는 것이라고 확정지어 설명할 수도 없다. 인간이 아는 것은 없다. 아무 것도 없다. 시작도 모르고 끝도 모른다. 그러기에 죽음이 삶의 끝이라고 막연히 얘기할 수도 없다. 모르니까 그냥 살다 가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르니까, 아는 것이 없으니까 종교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다. 숲속의 집 한채가 지은 사람을 모른다고해서 그냥 존재한다고 얘기할 수 없듯이, 나의 존재 또한 모른다고해서 그냥 존재한다고 얘기할 수 없다. 모르는 것을 임의로 결론짓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생각해봐야 한다. 종교에 대해서. 왜냐하면 종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살아가는 삶의 가치가 다르고, 살아가는 과정과 방법이 또한 많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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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택 칼럼 - < 공직 세습 >감사원이 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감사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291차례 진행한 경력직 공무원 채용 전부에서 비리와 규정 위반이 드러났고, 적발된 비리가 1200여 건이라고 한다. 전현직 직원의 자녀가 21명이 합격했고, 이 중 12명은 부정하게 채용됐다. 전 사무총장 아들을 뽑으려고 없는 자리를 만들고, 면접관은 ‘아버지 동료’들로 구성했으며, 합격한 아들에게 규정도 없는 관사까지 제공해 줬다. 다른 전 총장의 딸은 면접위원에게 ‘빈 점수표’를 제출하게한뒤 점수를 조작했고, 전 사무차장의 딸도 채용 공고 없이 특정인의 지원만 받는 인사를 통해 원하는 자리를 얻었다고 한다. 감사원은 전직 중앙선관위 사무총장 등 전현직 49명을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보도된 기사를 읽으면서 어느나라 공무원들의 얘기인지 꿈 같은 얘기를 듣는 것만 같다.어이가 없는 일이다. 북한 독재 체제하에서나 아니면, 절대 왕정시대에나 있을 수 있는 일이 벌어졌다. 어떻게 현재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건지 기가 막힌다. 필자도 평생을 공직자로 생활해 왔다. 그러기에 공직사회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공직사회에 비리가 전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없는 자리를 만들어 세습시키고 규정에도 없는 관사를 만들어주고 면접관을 아버지의 친구들로 구성하고, 또 점수표를 공란으로 제출토록하여 점수를 조작했다고 하니 공직사회가 아니라 사기집단과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헌법상 독립기구’임을 내세워 설립후 60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감사원의 직무 감찰을 받지 않았고, 비리의혹이 드러났는데도 자체 감사를 통해 면죄부를 줬다고 하니 놀랍기만 한 일이다.그런데 이 문제는 구조상의 문제도 있다. 선관위는 국가공무원법 17조2항에 의거, 국회, 법원, 헌법재판소 및 선관위의 소속공무원의 인사관련 감사는 각기관에서 한다에 근거하여 감사원 감사를 거부하고 있고, 반면 감사원은 감사원법 24조 3항에 따라 직무감찰에서 제외될 수 있는 공무원은 국회, 법원 및 헌법재판소 소속 공무원으로만 규정되어있어 선관위는 직무감찰 대상이라고 서로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아무 잘못도 문제점도 발견하지 못해, 결국 조직은 60년 동안 감사원 직무감찰 한번 안 받고 엄청난 부정 부패의 온상이 되고 만 것이다. 그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발 조치된 관련 공무원들의 사법처리는 면할 수 없다.그러나 구조상에 문제가 있다하더라도 공무원은 공무원법상 지키지 않으면 안 될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런데도 아직도 이렇게 정신 못차리고 있는 공무원들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신기할 따름이다. 바로 선거관리 임무를 공정하게 수행해야할 책임 있는 공무원들이다.감사는 처벌하기 위한 감사보다도 예방을 위한 감사가 더 중요하다. 그러므로 예측하지 못하고 예방하지 못한 잘못은 더 큰 잘못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는 이와 같이 부끄러운 일이 재발되는 일이 없도록 일벌백계해야 할 것이고, 구조상의 문제점도 조속 보완 조치해 나가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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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택 칼럼 - < 한동훈 특검법 >5월30일부터 새로 선출된 22대 국회가 시작 된다. 사람은 누구든지 새로운 일을 처음 시작할 때에는 잘 하겠다는 희망적인 각오를 다짐 한다.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다. 표현은 안 하더라도 국민들을 위해서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할 것이다. 그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어느 한 사람은 임기도 시작하기 전부터 첫 마디가 '한동훈 특검법'을 만든다고 벼르고 있다. 국회의원이 되어서 역사에 남길 첫 번째 할 일이 특검법 만드는 일이라고 한다.'국회의원은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 이익을 우선으로, 양심에 따라 성실히 직무를 수행해야 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라고 돼 있다. 한마디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일 해야 하는 것이 국회의원이다. 그리고 국민들은 새로 시작되는 국회에 대해 관심과 기대를 가지고 있고, 무엇인가 좀 더 발전적이고 건설적이며 좀 더 희망적인 삶을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그런데 시작부터 국민에게 비전과 희망을 주는 것이 아니라 불안과 불편을 준다. 정쟁이 아니라 전쟁을 선포하는 것과 같다. 누가 듣더라도 보복성 발언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보복할 기회가 온 것인가. 국회가 결투의 장이라도 되는 것인가. 이해 불가다.'두번째로 특검의 대상은 검찰 수사의 공정성을 기대할 수 없거나 수사가 공정하게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는 사건에 대하여 특별 검사에게 수사권을 맡기는 제도다.' 다시 말해 검찰의 수사가 어렵다고 여겨지는 사건에 한하여 특별 검사에게 수사권을 주는 제도다.그동안 국민들은 특검하면 중대한 범죄로서 수사기관에서 공정하게 수사할 수 없을 경우에 한하여 특검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국민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한동훈이가 무엇을 잘못했었는지? 무엇을 잘못해서 수사기관에서 공정하게 수사할 수 없어서 특검을 하자는건지,' 하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특검에 예외가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한동훈에 대해서 어떤 검찰 수사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가 어떠했었는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특검을 하자는건지. 내가 당했으니까 같이 한번 당해보자는 것인지. 이해가 난감하다.세번째로 특검법은 발의할 사람이 발의해야 한다. 몇 년동안 온통 나라를 시끄럽게했던 대표적인 사람이다. 지금도 진행 중에 있는 사건이고, 파렴치 범죄로 2심까지 징역형을 받은 사람이다. 억울하다며 당(黨)을 만들고, 심판 받는 사람이 현 정권을 심판하겠다고 한다. 억울할 수는 있겠지만 혼자만의 생각이다. 여의도의 잣대로는 억울할 수 있지만, 일반 국민들의 기준에서 본다면 자신의 한 일이 부끄럽고 파렴치한 잘못된 범죄 행위임을 알아야 한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더 큰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감히 할 말을 할 수 없고 침묵하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생각이고 상식이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의 잘못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채 남을 심판하겠다는건지 알 수가 없다. 국민들은 답답하다. 국회가 국민들을 위해서 일하는 곳이 아니라, 어쩌다가 자신들 보복 혈전의 장소가 되었는지, 왜 이렇게 됐는지.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답답하고 불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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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택 칼럼 - < 집착과 망각(忘却) >이제 잠깐 숨을 돌리고 생각해보자. 우리 인간들은 참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정신을 차릴 수 없도록 바쁘게 살아 간다. 때로는 이것이 잘 살고 있는 것인지 하는 생각이 들어갈 때도 있다. 지구촌 곳곳에서의 전쟁과 질병과 기아와 아사(餓死)와 마약, 정치적 갈등과 각종 사건 사고 등 숨 돌릴 시간 없이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인간들 본연의 모습대로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제 잠시 숨을 멈추고 생각해 보자. 인간들에게는 두가지의 사실이 있다. 삶과 죽음이다. 그런데 현실에만 너무 집착하고 매몰되어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또 하나의 다른 사실이 있다는 것을 망각한채 영원히 살 것처럼 미워하고 갈등하고 저주하며 이기적으로만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우리 주변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고, 그래서 항상 죽음을 의식하며 살아가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그러한 죽음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절박함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죽음을 막연히 나의 죽음이 아닌, 남의 죽음으로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는 ‘그래, 내게도 죽음은 언제 올지 모르지, 오늘이 될 수도 있고 내일이 될 수도 있지’라고 말은 해 보지만 그러나 역시 현실이 아닌 막연한 미래를 생각할 수밖에 없기에 절박함을 느낄 수 없다. 그런데 언제 올지 모르는 죽음에 대해서 막연히 상상만 해 보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삶의 시간을 다 살아서 분명하고 확실하게 닥쳐올 죽음 앞에 지금 막 다다랐다’고 생각해 보거나, ‘지난 삶의 시간들이 분명 나의 곁을 지나간 것처럼, 닥쳐올 죽음의 시간도 분명히 그리고 확실하게 지금 막 내 앞에 다다랐다’고 생각해본다면, 죽음에 대해 좀 더 절박하게 느껴짐을 체험하게 된다.그런데 혹, 살기도 바쁜데 죽음까지 뭘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있느냐고 얘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언젠가는 나에게 확실하게 닥쳐올 죽음이 나의 일이 아닌, 남의 일인양 생각하며 살아갈 수만은 없지 않은가. 살아가는 것도 사실이지만 죽음 또한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한 죽음을 얼마나 또 어떻게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느냐에 따라서 삶을 온전히 인식할 수 있고 아닐 수 있으며, 삶의 의미와 가치가 달라질 수 있고 살아가는 방법과 과정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죽음의 사실을 조금이라도 생각할 수 있다면, 삶에 대한 생각들이 달라질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어쩔 수 없이 잃어버려야 할 삶들이고, 버려야 할 삶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전사(戰士)들처럼 살아간다. 죽이고 죽임을 당한다. 영원한 권력을 쥐기위해, 또한 영원한 명예와 부를 쥐기위해 싸운다. 그렇다고 현실을 무시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오직 죽음이라는 사실을 망각한채, 현실에 매몰돼 피를 튀기며 싸운다는 것이다. 죽음의 사실을 생각할 수 있다면, 삶의 끝을 생각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그래도 조금은 서로 이해할 수 있고 양보할 수 있고 협조하며 아쉬워하고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 그렇게 살아가야만 하는 것은 아닌지 하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현실에만 집착하는 어리석은 삶이 되어서는 안 되고, 죽음을 망각하는 바보 같은 삶이 되어서도 안 되며,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삶이 아닌, 가끔은 그래도 남을 생각하고 위할 수 있는 삶이 되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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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택 칼럼 - < 대통령의 오해 >총선이후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독선과 독단과 불통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16~18일 4월 3주 조사에서 윤 대통령 국정 수행 긍정 평가는 직전인 3월 4주보다 11%포인트 떨어진 23%로 나타났고, 반면 부정 평가는 68%로 10%포인트 올랐다. (조선일보4.19일자) 또한 국민들은 이번 총선을 거치면서 대통령에 대한 위기 의식을 느끼고 있다. 다음은 모 일간지 칼럼에 실린 내용이다."윤 대통령의 국정 스타일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그의 경험과 경력에 한계가 있는 만큼 그의 성격과 태도를 바꾸는 것이 그리 쉽고 간단하지 않다는 점이다. 용산 쪽에 있었던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윤 대통령이 너무 독선적이고 독단적이고 자의적인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한다. 자기가 옳다는 생각이 강하고 자신의 지식과 선의가 통한다고 믿는다는 것이다."(2024.4.16일자 조선일보)대통령의 독선과 독단을 성격으로 규정하고 있고 그래서 바꾸기가 쉽지 않다고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성격보다는 신념과 의지력의 표현이라고 생각 한다.그런데 그 신념과 의지력이 독선과 독단이란 프레임에 걸려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윤석열 대통령은 공직자 출신이다. 평생을 공무원이라는 조직속에서 생활해 왔다. 조직속에서는 무엇보다도 리더의 신념과 의지력이 중요하다. 리더의 의지력에 따라서 조직이 성공하느냐 아니냐가 결정 된다. 왜냐하면 조직은 법(法) 안에 존재하고 있고 상명하복(上命下服)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리더의 의지력만 있으면 어떠한 일도 해 낼 수 있다. 여기에 대통령의 오해가 있는 것이다. 대통령의 자리는 그렇지가 않다. 대통령의 자리는 신념과 의지력만으로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상명하복이 아니라 설득과 이해의 자리다. 야당이 있고, 반대 의견이 있고, 끌어 내리고 밟고 올라서려는 세력들이 있다. 그런데 그런상황에서 소통과 대화와 설득과 이해 없이 강한 의지력만 가지고 밀어 붙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할 수 없다. 불가능 하다. 물론 신념과 의지력은 매우 중요하다. 신념과 의지력이 없이는 아무 일도 해 낼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은 프레임 전쟁시대다. 할 수만 있다면 상대방에게 어떠한 프레임이라도 씌어 끌어 내리려한다. 필자는 칼럼을 통해서 지혜에 대해 여러번 강조했다. 신념과 의지력은 지혜란 바탕위에 있을 때에만 성공 할 수 있다.재목이 좋다고해서 좋은 집이 지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재목도 중요하지만 집을 짓기 위한 기초가 있어야 한다. 소통과 설득과 이해의 기초가 있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처음부터 그런 기조로 정책을 이끌어 왔어야 했다. 그런데 그러지를 못했다. 그래서 국민을 위한 정책들이 독선과 독단과 오만으로 비취고 그것이 프레임에 갇혀 발목이 잡히고 만 것이다. 안타깝다. 정치는 소통과 대화의 기술이다. 공중누각을 지을 수는 없다.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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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택 칼럼 - < 화합해 나가야 한다 >이번 총선은 지역구에서 민주당이 161석, 국민의힘이 90석을 얻었다. 두 정당이 실제 득표한 수는 민주당이 1475만8083표, 국민의힘이 1317만9769표로 표차는 157만8314표다. 득표율로는 50.45% 대 45.05%로 득표율 차는 5.4%포인트이지만 당선자 수는 두 배 가까이 된다. 승자 독식인 소선거구제이기 때문이다. 이제 총선은 끝났다.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해야 한다. 그동안의 있었던 정당간의 모든 의혹과 미움과 증오와 갈등들은 다 털어버리고 새롭게 출발 해야 한다. 정쟁은 전쟁이 아니다. 전쟁의 목적은 무력을 사용하여 상대를 정복하는 것이지만, 정쟁의 목적은 공동체를 위한 최적의 안을 선택하는 과정이다. 전쟁이 돼서는 안 된다.대통령은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깨닫는 계기가 돼야 한다. 물론 자유, 인권, 공정, 연대의 가치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치다. 그러나 거기에 지혜가 있어야하고 기술이 있어야 한다. 지혜가 없이는 마치 좋은 재목을 가지고 기초 없이 집을 짓는 거와 같다. 오늘의 현실을 겸허히 받아 들이고 최선을 해야 한다. 물론 가는 길이 이제보다도 더 어렵고 힘들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명(闡明)한 정책들이 흔들림 없이 추진 돼야 한다. 정책은 찬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반대 의견도 있다. 통합하는 것이 정책이다. 반대하는 국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찬성하는 국민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45.05%로 패한 국민의힘은 졌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상대는 적이 아니라 하나의 공동체다. 선거는 공동체의 필요한 최적의 안(案)을 찾아내는 과정이고, 이제 그 최적의 안이 확정된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이유가 없다면 맘에 들던 안들던 최적의 안에 승복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다.아울러 50.45%로 이긴 민주당은 50.55%의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국민들이 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되고, 적이 아니라 한 배를 탄 공동체라는 것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패자의 아픔에 공감할 수 없는 승자는 진정한 승자가 아니고, 승자라고 자만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다. 나의 잘못과 내가 지은 죄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내 자신이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된 것에 대해 감사하고 국민만을 지향해 봉사해야 한다. 그런데 어느 사람은 승자가 되자마자 상대방에 대한 보복부터 하겠다고 공언하고 나선다. 주먹을 불끈 쥐고 증오와 적개심에 가득찬 눈 빛이다. 무섭다기 보다는 헛 웃음이 나온다. 그런 양심이 어디서 나올 수 있는지. '뭐~ 한 사람이 큰 소리 친다'고는 하지만, 국민들이 웃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세상이 잘 못돼도 참 잘못 됐다. 지혜가 없는 사람이다. 지식인이 꼭 지성인은 아닌 것 같다.그런데 차제에, 얘기했듯이 소선구제에 대한 이견이 있다.득표율 차는 5.4%인데 당선자 수는 두 배 가까이 된다. 지역구마다 국회의원 1명을 뽑는 현행 소선거구제는 단 1표만 이겨도 승자가 된다. 그렇다면 1등 후보를 선택한 이외의 절반에 가까운 국민들의 표는 무의미한 것이 된다. 국민뜻의 반영이라고 볼 수 없다. 이러한 구조는 여야와 지지자 간 극한 대립과 갈등을 부르게 되고, 모두에게 해로울 뿐이다. 소선거구제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화(火)를 품어도 해가 떨어질 때까지 품지 말라'는 말이 있다. 자성의 마음으로 화해와 협조해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마음 그 표정 그대로 자신에게 다시 화(禍)가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깨달아야한다새로운 마음으로 출발 해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가능하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우리의 삶은 겸허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고, 한 배를 탄 공동체다. 승자가 어디 있고 패자가 어디 있으며, 승자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우리는 서로 이해할 수밖에 없고, 용서할 수밖에 없으며,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인 것이다. 대한민국이란 공동체를 위해서 화합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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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택 칼럼 - < 답(答)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4월1일 의대 증원 문제에 대해 51분에 걸쳐 대국민 담화를 했다. 늦은감은 있으나 시종 진지하고 간절한 호소를 했다. 많은 국민들 또한 다 그렇게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 된다. 원고지 70장 분량의 담화 상당 부분을 의료 개혁에 대한 이유와 증원 2000명 산출 근거와 당위성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했다. 의료계에 대해선 '과학적 근거를 갖고 통일된 안을 제시하면 언제든지 논의할 수 있다'고 했고, 의·정 갈등 해결을 위해 국민이 참여하는 3자 대화체 구성도 제안했다.그러한가운데 4월4일 오후에는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박담 비상대책위원장과 면담을 가졌다.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내고 현장을 떠난지 45일 만이다. 하지만 증원 문제에 대해서는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다. 박위원장은 2000명 증원을 백지화한 뒤 원점에서 재 검토하자고 했고, 윤대통령은 ‘의대 증원은 국민 요구에 따른 의료 개혁 과제’라는 점을 들어 어려운점을 표시했다.박위원장은 면담 직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없습니다'라고 썼고, 면담 결과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는 면담 前 내부 공지에서 '의대 증원과 필수 의료 패키지 전면 백지화'라고 했고, 또 '요구안 수용이 안 되면 원래 하던 대로 다시 누우면 끝'이라고도 했다. 그런가하면 앞서 대한의사협회 임현택 차기 회장 당선인은 '의사에 나쁜 프레임을 씌우는 정치인들에 대해선 낙선 운동을 펼치겠다'고 하고 '국회 20~30석 당락이 결정될 만한 전략을 갖고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대화 전제 조건으로 '대통령의 직접 사과'가 필요하다고 주장도 했다.국민들은 그래도 이번 기회에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박 위원장의 말대로 정말 '대한민국의료의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의료계의 입장이 아닌, 국민들의 입장에서 볼때 의료계에 거는 기대와 희망이 보이지 않고 암담하다는 생각이 들어간다. '의견 수용이 안 되면 원래대로 다시 누우면 된다'고 하고 있고, '20~30석은 당락시킬 전략이 있다'고 하며, 대화조건으로 '대통령의 직접 사과'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대안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증원 철회 주장만하고 있다.대화조건으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데, 무엇을 사과하라는 건지 내용이 없다. 대통령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국민수에 비해 의사수가 적어 의대증원을 하겠다는 것이 잘못이라도 되는 것인지, 그렇다면 숫자는 대화로 조정하면 되는데, 대화의 전제 조건이 '사과'라고 하니, 상식적이라는 생각이 들어가지 않는다.의사들은 자타가 인정하고 싶은 지성인들이다. 그런데 어떻게 국민들에게 실망을 줄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간다. 지성인다운 언행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다음의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답(答)할 것인지를 얘기해야 한다.첫째, 이 싸움은 단순히 어느 특정인과의 싸움이 아니라 국민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피해는 오로시 국민들에게 직접 돌아오기 때문이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76%가 증원을 원하고 있고, 16%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답 할 것인지 말 해야 한다. 둘째, 타결이 안 되고 시간을 끌수록 의료계에 나쁜 이미지만 남게 된다. 모든 국민들은 이러한 상황들을 오직 의사들의 밥그릇 욕심때문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답할 것인지. 셋째, 의사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우리나라의 임상의사수(한의사 포함)는 인구1,000명당2.5명 꼴로 OECD국 평균 3.7명에 비해 크게 부족하여 멕시코가 꼴찌로 2.41명, 한국이 2.51명으로 꼴찌에서 두번째가 된다. 부족 의사수에 대해서는 어떻게 답할 것인지.넷째, 현장에서는 지금도 국민들의 희생이 따르고 있다. 히포크라테스, 제네바 선언으로 일생을 인류를 위해서 봉사하겠다고 선서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환자들을 팽개치고 집단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인지. 법적인 문제를 떠나서 의사의 윤리적인 측면에서도 있을 수 없는 비인간적 범죄 행위라는 것을 생각해 봤는지.얼마전 충북 보은에서는 물웅덩이에 빠져 심정지 상태로 구조된 생후 33개월 아이가 상급 종합병원 이송을 거부당하다 숨지는 일이 발생했고,충북 충주에서도 넘어진 전신주에 깔린 70대가 병원 3곳으로부터 이송을 거부당한 끝에 결국 숨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또 기약도 없이 하염없이 수술을 기다려야 하는 암 환자들과 가족들은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 여기에대한 답은 무엇인지. 말 해야 한다. 답하지 못한다면 국민들은 오로시 상위소득 계층의 사람들이 밥그릇 챙기기 위한 것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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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택 칼럼 - < 지혜가 필요하다 >인간사회에는 갈등이 있다. 갈등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런데 신의 세계에는 갈등이 없다. 왜냐하면 완벽만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갈등을 행복도 만들 수 있고 불행도 만들 수 있으며, 천국도, 지옥도 만들 수 있다. 인간들만이 가지는 의지력이다. 다른 동물들이 가질 수 없는 축복이고 가치다. 의지력에 의해 천사가 될 수도 있고 악마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요즘 천국과 지옥을 느끼고 천사를 볼 수 있다.지난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준결승전에서 주장 손흥민(31)과 이강인(22)이 몸 싸움이 있었다. 손흥민이 멱살을 잡자 이강인이 주먹질을 했다. 이로인해 하극상을 한 이강인을 향한 여론의 분노가 폭발했다. 그런일이 있은 후 이강인이 곧바로 런던으로 손흥민을 찾아가 사과했고 그리고 인스타그램에 ‘게시물’ 형태의 반성문까지 올렸다.이에 대해 손흥민 역시 인스타그램에 이강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면서, “강인이가 진심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저를 비롯한 모든 선수들에게 사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강인이가 그 날 이후로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한 번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 달라”고 강인이의 마음까지 헤아려 걱정하며 축구 팬들에게 부탁까지했다. 그리고 지난 태국에서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전이 있었고, 이때 4차전 태국 원정 경기에서 손흥민은 이강인의 패스를 받아 두 번째 골을 터뜨리게 됐는데, 이 때 이강인은 골이 터지자 기뻐하며 앞.뒤 볼 겨를도 없이 곧바로 손흥민에게 달려가 펄쩍 뛰어올라 안겼다.이에 손흥민 역시 달려오는 이강인을 활짝 안아주며 “무겁더라”하고 웃은 뒤 “이번 일로 인해 강인 선수가 정말 더 멋진 선수가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오랜 만에 강인 선수를 끌어 안아봤는데 너무 좋았다. 강인이가 귀여운 막내의 매력이 있는데 그 매력을 오래 간직했으면 좋겠다”며 “내가 옆에서 강인 선수를 많이 도와주겠다”고 덧붙였다.사랑이 넘치는 아름다운 모습이고, 보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뭉쿨하게 해주는 장면이다. 이 분들이 바로 천사고 천국의 모습이다.그런데 한편 요 며칠사이 어느 정당의 공천과정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비정함을 느낀다. 비명계에 속한 후보 한 사람은 소속 정당의 20대 대통령선거 경선 후보이기도 했던 사람이다.물론 시스템 공천이냐, 사천이냐를 논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오직 공천 과정을 보면서 참으로 냉혹함을 느끼며 그 시기의 손흥민과 이강인의 모습이 오버랩(overlap) 되는 것이다.보도된바와 같이,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선 결선투표에서 친명계 원외 인사인 정봉주 전 의원에게 패했다. 대표적 비명계 인사인 박 의원은 당 공천관리 위원회로부터 ‘현역 하위 10%’ 통보를 받았고, 당헌·당규상 경선 점수의 30%를 감점받게 돼있다. 그런데 공천이 확정된 정봉주 전 의원의 ‘목발 경품’ 발언 논란에 대해, 사과 받을 당사자들이 ‘연락이나 사과를 받은 적 없다’는 입장을 밝힘으로 민주당은 막말 논란에 싸인 정봉주 전 의원의 공천을 취소했다. 그러면서 비명계 박용진 의원이 “경선이 불공정하게 치러졌다”며 낸 재심 신청도 기각했다. 그리고 다시 재 경선한 결과, 박용진(재선) 의원은 친명계의 지원을 받은 조수진 변호사에게 패하게 됐다. 정봉주 전 의원의 공천 취소로 이틀 전 경선 후보가 된 조 변호사가 박 의원을 꺾은 것이다.그런데 이번에는 후보로 결정된 조수진 변호사가 자진 사퇴를 선언했다. 이유는 변호사 시절 다수의 성폭력 피의자를 변호했다는 논란 때문이다.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은 최종 후보로 한민수 대변인을 공천했다. 한 대변인은 지난 대선 때부터 이 대표의 ‘입’ 역할을 한 친명 핵심의 인물이다. 기여코 박용진 의원은 공천에서 탈락됐다.일련의 일들을 보면서 비명계 한 사람의 후보는 결국 처절한 버림받음의 모습이 됐다. 많은 국민들도 '참 혹독하다'는 생각을할 수 있고 또 그렇게 느꼈을 것이라 생각 된다. 그러면서 떠오르는 것이 앞에서 얘기한 손흥민이 이강인을 품는 아름다운 모습이 오버랩 되는 것이다.저기는 저런데 여기는 참으로 살벌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기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이기적이면 되는 것일까. 지혜가 필요하다. 또 어느 사람은 정의를 강조하지만 고집스런 오기와 불통으로 국민들로부터 역풍을 맞는 사람도 있다. 오만과 독선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이기적이던 이타적이던 강한 의지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혜가 있어야 한다. 목적달성을 위한 소통, 설득, 시기, 방법, 때에 따라서는 자신의 비움 등의 지혜가 있어야 한다.지혜가 없는 의지력은 마치 기초없이 모래위에 집을 지은 것이나 다름 없다. 창수(漲水)가 나고 바람이 불면 그 집은 무너진다.손흥민의 이해와 용서같은 지혜가 필요하다.이해는 남을 알고 받아 들이는 것이고, 안다는 것은 인지가 아니라 공감하는 것이다.의지력이 중요하듯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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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태 칼럼 - < 지혜를 모을 때다 >의사들의 집단 행동이 한달이 넘어가고 있다.정부는 이탈 전공의들에 대해 금주부터 면허정지에 들어간다고 하며 3월내에 돌아오라고 하고 있다.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21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에서 “정부는 업무개시명령 위반에 대해선 다음 주부터 원칙대로 의사면허 자격정지 처분을 해나갈 것”이라며 “전공의 여러분은 이제 환자 곁으로 돌아오기 바란다”고 했다.작금의 의사들의 집단 행동은 국민들 누가 보더라도 밥그릇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정원을 줄이겠다는 것도 아니고 늘리겠다는 건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밥그릇 때문이 아니라면 증원하는 것 만큼 자신들의 일이 줄어드는데 오히려 환영해야할 일이 아닌가.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밥그릇을 챙긴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의사의 소득은 누가 뭐라해도 상위 소득이다.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월 평균 소득은 333만원이다. 이 얘기를 듣는 어느 의사분은 10억 투자한 사람의 소득과 일반 근로자의 소득을 비교하면 되느냐고 얘기한다. 말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투자를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들의 생활은 어려운데 상위 소득 계층의 사람들이 국민들의 생명을 볼모로, 환자들이야 어찌 되었든지간에 내 밥그릇만 늘리려고 해서는 되겠냐는 얘기다. 그러니 국민중 어느 누가 증원 반대에 동조할 수 있겠는가. '국민들의 대다수가 증원을 원하고 있다.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계획에 대해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긍정적이다.한국갤럽은 2.16일 “내년 대학 입시의 의대 입학 정원을 늘리기로 한 결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대해 1002명의 유권자 중 76%가 “긍정적인 점이 더 많다”고 답했다고 밝혔다.'(조선일보2.16자) 의사도 대한민국 안에 있는 집단이다. 국민위에 군림할 수 없고, 정당한 정부정책에 대해 힘으로 밀어 붙일 수 없다. 물론 의사표시는 할 수 있지만 정당한 정책을 뒤집으려해서는 안 된다. 환자를 팽개치고 이권을 위해 저항하는 것은 의사표시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또 정원을 늘리게 되면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고 한다. 그것 역시 교수의 수를 늘리면 되는 것이고 기자재의 확충 등 교육의 질을 높이도록 제도를 갖추면 되는 것이지, 이유 아닌 이유를 얘기하고 있다.알아야할 것은, 지금의 집단행동은 단순히 윤석열 정부와의 기(氣) 싸움이 아니라, 국민과의 싸움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하고, 국민들의 시선은 날로 곱지 않은 눈으로 주시하고 있다는 것도 또한 알아야 한다. 적당한 욕심은 좋다. 그러나 과욕은 화를 입는다. 국민의 76%가 증원에 찬성하고 있고, 정부는 정책으로서 확정 했다. 확정된 정당한 정책은 철회될 수 없다.예전처럼 힘으로 밀어붙이려 해서는 안 된다. 지금 정부의 자세는 과거 여느 정부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배고픈 사람에게는 동정의 마음이 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 과욕을 부리는 사람에게는 반감이 간다. 겸허히 자신들을 돌아보고 과욕이었음을 깨닫고 환자들이 있는 현장의 자리로 속히 돌아 오는 길 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국민들의 눈 높이다.이러한 가운데 정부는 의대 정원 2000명에 대한 대학별 배정을 마쳤고, 전국의대교수협의회 비대위원장이 21일 "정부가 대화의 장을 만들면 교수들도 사직서 제출을 철회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따라 전국의대교수협의회회장단 요청으로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24일 오후 대화를 갖었다.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의료계 일각의 제안이기도 하지만 '일단 2000명 증원으로 시작하되 그 다음 정원은 객관적으로 재검증해보자’는 제안과 이탈 전공의들에 대한 유연한 행정처분 요구 등에 대해 지혜를 모아 대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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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택 칼럼 - < 무덤 친구 >2024.03.06자 조선일보 보도에는 "日노인들이 요즘 '떠나는 길, 쓸쓸히 가기 싫어' ‘무덤친구’를 사귄다고 한다.황혼기에 접어든 노인들이 함께 합장묘에 누울 이들과 생전부터 다양한 교류를 맺으며 이른바 ‘하카토모’(墓友·묘우, 무덤 친구)관계를 갖는다는 것이다. 통상 합장묘는 남편이나 부인 등 가족 들이 한 무덤에 묻히는 경우인데, 일본에선 무덤을 돌봐줄 사람이 없거나, 가족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독거노인들이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묻히는 경우라고 한다.그리고 이들은 같은 무덤에 누일 사람들끼리 오찬회도 갖는다. 보통 모르는 사람들과 식사를하게 되면 자연스럽지못할 수도 있을텐데, 합장묘가 이어준 인연이랄까 새로운 연결고리란 생각에 전혀 저항감이 없다고 한다.전문가들은 혈연을 넘어 무덤에 함께 들어간다는 유대감이 노인들의 삶을 느슨하게나마 지탱해준다고 하고 있다. 또한 관에 들어가 ‘시신’이 되는 경험을 미리 해보는 이른바 ‘입관 체험’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글을 읽으면서 왠지 쓸쓸한 느낌을 감출 수가 없다. 분명 밝고 희망적인 얘기는 아니다.떠나는 길, 쓸쓸히 가기 싫어 친구되어 같이 가자는 얘기다.오래전 일이지만 필자도 관속에 들어가 죽음을 체험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별로 큰 느낌이 없었던 것 같다.그것보다는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은가 생각 된다.우리의 삶은 현실만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삶과, 죽음을 함께 의식하며 살아가는 '종말론적 삶'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종말론적 삶'이란 오늘을 살아가면서 '내가 죽어 캄캄한 땅속에 묻혀 있을 자신'을 느끼며 살아가는 삶이다. 우리의 주변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며칠 전 살아 있던 친구가 갑자기 죽어 오늘 장례를 치룬다는 소식을 듣기도 한다. 그렇다면 삶과 죽음의 차이는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고, 그럼에도 한 편 아직 살아 있음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죽은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 기쁨이 아닐 수 없고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캄캄한 땅속에 묻혀 있을 내 자신'을 지금 느낄 수 있다면, 눈에 보이는 모든 대상들이 새롭고 아쉬워해야할 대상들이 아닐 수 없고, 미운 사람 싫은 사람이 어디 있으며, 돈과 명예와 권력은 또한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오직 순간순간이 소중할 뿐이고, 그 무엇도 다 아끼고 사랑해야만 할 대상들이고 사람들임을 깨닫게 된다. 가진 것이 없어도, 명예가 없어도, 권력이 없어도, 어제 부자로 죽은 사람 보다도, 또는 명예와 권력을 가지고 오늘 죽은 사람보다도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 내가 행복한 삶이 아닐 수 없다.그런데 절실하게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죽음을 막연히 상상만 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사실을 지금의 현실로 느끼는 것이다.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것 만큼 오늘 존재에 대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90을 느낄 수 있다면 살아있음에 대한 행복을 90을 느낄 수 있고, 70을 느낄 수 있다면 70만큼 행복을 느낄 수 있으며, 30을 느낀다면 존재에 대한 행복을 30만큼만 느낄 수 있다.삶의 가치는, 살아 있음에 대한 가치를 느끼는 것 만큼이고, 살아 있음에 대한 가치를 느끼는 것은 죽음을 느끼는 것 만큼이다.죽음은 누구에게나 닥쳐 올 사실이고 현실이다.잘 사는 삶은, 종말론적으로 순간순간을 마지막인 것 같이 진정으로 아쉬워하고,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이다.죽음 뒤의 쓸쓸히 떠나는 길을 걱정하는 삶보다,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아가는 것이 잘 사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