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칼럼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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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택 칼럼 - < 달란트 >우리는 머리가 좋거나 재능이 많은 사람을 부러워한다. 어떻게 저 사람은 저렇게 머리가 좋을 수 있을까. 어떻게 저 사람은 저렇게 재주가 많을 수 있을까 하고 부러워한다. 그런데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神은 인간들에게 달란트를 줬다. 한 달란트를 준 사람, 다섯 달란트를 준 사람, 열 달란트를 준 사람, 사람에 따라 각각 다른 달란트를 줬다. 그리고 각 사람의 재능별 달란트 또한 다르다. 머리는 좋은데 노래를 못하는 음치가 있고, 운동은 잘 하는데 공부를 못하는 사람도 있다. 각 재능에 따라 달란트가 다르다. 그러기에 한 가지 재능에 대해서 한 달란트를 받았다고 실망할 필요가 없고, 열 달란트를 받았다고 해서 자랑할 필요가 없다. 재능별 달란트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부터다. 우리는 이러한 생각을 한다. 나는 성품이 악하고 모질지 못하기에 착하고 선한 일에 대해서는 그래도 다른 사람들 보다는 낫지 않은가 하고 생각도 한다. 예를 든다면 필자는 가끔은 살아 오면서 주변사람들에 대해 잘 해 주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후회할 때가 있다. 그러면서 잘 해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태생이 악하고 모질지 못하니까 잘 한 것이 아닌가 하고 自慰할 때가 있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맞는 말일까. 잘 해 준 것은 없지만 해를 끼치지 않았으니 그래도 잘 한 것이 아니냐는 착각을 한다.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선하고 착한 것은 神이 준 달란트다. 그 위에 무엇을 해야 한다우리가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하는냐 하는 인간의 의지력이 중요한 것이지, 神으로부터 받은 달란트 자체는 자랑할 것이 못 된다. 받은만큼 책임과 의무가 따르기 때문이다. 열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열 달란트 이상 부터 계산 돼야 하고,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 이상부터 계산 돼야 하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한 달란트 이상부터 계산하면 된다. 열 달란트를 받고서 다섯 달란트를 남긴 사람보다는 한 달란트를 받았지만 두 달란트 세 달란트를 남긴 사람이 더 잘 한 것이다. 내가 착하고 선한 달란트를 받았다면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남을 위해서 희생하고 사랑할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의무고 책임이다. 또 삶은 행복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냐고 얘기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창조하지 않는 행복은 행복이 될 수 없다.우리 인간들은 일 하는 존재다. 神이 준 달란트 위에 새로운 창조의 일을 해야하는 의무와 책임이 있는 존재다. 가만히 앉아서 일 하지 않는 것은 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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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택 칼럼 - 야영 없는 잼버리 대회스카우트 잼버리 대회는 세계 스카우트 연맹에서 주최하는 야영대회로 만 14세에서 17세까지의 전세계의 스카우트들이 참가하는 대회다.초대 대회는 1920년 영국 런던에서 열렸고,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이란 혁명으로 대회가 취소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매 4년에 한번씩 열리고 있다.그런데 이번 새만금에서 열린 '제25회 세계 잼버리 대회'는 폭염 대책뿐 아니라 시행 과정에서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노출 됐다.나무 한 그루 없고, 물이 흥건한 진흙탕 매립지에서 국제 행사가 열렸다. 잼버리 행사에 필요한 메인센터 건물은 480억원 예산이 들었는데도 행사 때까지 다 짓지도 못했고 내년에 완공 예정이라고 한다. 그런가하면 온열 질환 치료 약품 일부가 동이 나기도 하고, 화장실·샤워실의 위생 문제가 지적되기도 하며, '모기가 들끓는다'는 얘기도 많았다.이러한 가운데 참가국중 가장 많은 4,500여명의 청소년을 파견한 영국이 지난 4일 야영지에서 철수 했고, 1,200여명이 참가하는 미국도 미군기지가 있는 평택으로 옮겼다.일이 이쯤 되니 정치권에서는 책임을 두고 연일 여.야간 네 책임이다,라며 싸우고 있다. 대내외적으로 볼썽 사나운 일이다. 물은 이미 엎질러 졌다. 잼버리는 끝났지만 잘잘못을 가려 낼 때다. 책임과 잘못은 다르다. 책임은 잘잘못을 떠나서 현 정권이 지는거지 누가 지는가. 집권한지 1년하고도 수 개월이 넘었다. 아니 하루라도 그 책임은 현 정권에 있다. 그 동안에 뭘 점검하고 뭘 확인 했는가. 5년동안 전 정권이 해왔으니 전 정권의 책임이라는건가. 책임에 대해서는 異論이 있을 수 없다. 이제부터는 잘잘못을 가려내야 한다. 철저히 가려내야 한다. 가려내지 않으면 안 된다.준비 과정에 무엇이 잘못 됐는지, 어디에서 잘못 됐는지를 가려 내야한다. 전 정권에서 5년동안 했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은 무엇이 있는지, 했다면 무엇이 잘못 됐는지, 계획은 처음부터 외국의 경험 사례대로 완벽하게 잘 만들어 졌는지, 만들어졌다면 일정별 계획대로 차질 없이 진행 됐는지, 예산은 목적대로 집행 됐는지, 목적외로 집행 된 것은 없는지, 준비를 빙자한 외유성 출장은 없었는지, 준비를 빙자한 불필요한 인건비 낭비는 없었는지 등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예산은 국민의 혈세다. 한 푼의 혈세라도 소홀히 관리하거나 소홀히 조사할 수 없다. 그리고 그 결과를 一罰百戒해야 한다. 그런데 한편 이러한 생각이 들어간다. 스카우트 잼버리 대회는 야영대회다. 관광이 아니다.'스카우트의 근본 정신은 함께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 도전 정신'으로 '편안함이 아닌 야영과 모험 등을 통해 고난을 극복해 나가는 훈련'이다. 스카우트 대원의 배지는 ‘고난을 이겨냈다’는 증표로 배지가 많을수록 자부심을 갖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 대회는 야영이 없는 행사가 됐다.해외 네티즌들 사이에선 '극한 환경을 극복하는 것이 잼버리 정신인데, 아이들을 호텔에서 자게 하는 등, 한국 정부가 스카우트 대원들에 대해 너무 과도한 배려를 해 준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한다.그러한 측면에서 생각해 본다면, 이번 제25회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대회는 스카우트정신에 입각한 대회가 되었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극한 상황을 참고 인내하고 극복하는 과정은 청소년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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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택 칼럼 -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전철을 탈 때는 맨 앞 칸이나 뒤칸을 탄다. 이유는 그래도 사람들이 제일 적기 때문이다. 오늘도 맨 뒤 칸에 자리를 잡았다. 자릿수는 경노석을 포함해서 39석인데 자리에 앉은 승객의 숫자는 약 17명 정도가 된다. 자리가 널널하다. 마음에 드는 자리를 골라서 앉아도 된다. 그래서 출입구쪽 맨 끝 좌석에 앉았다. 사람들 사이에 끼어 앉는 것 보다는 한 쪽이 비어 있어 편하기 때문이다.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도 다 그 자리를 선호하는 것도 같다. 그러나 옆 빈 공간에 사람이 서 있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더욱 답답하긴 하다. 오늘은 새벽부터 찜통 더위다. 날씨가 더우니 몸에 거치장스러운 물건들은 멀리하고 싶다. 우선 부담스러운 멜빵 가방을 옆 빈자리에 자연스럽게 놨다. 그러고도 그 옆자리 옆자리는 다 비어 있다. 땀을 식히면서 눈을 감고 얼마를 가다가 눈을 떠 봤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몇 번이고 이 쪽 저 쪽을 둘러 봤다. 왜냐하면 나는 생각 없이 가방을 옆 빈자리에 놨는데, 가만히 보니 17명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 같이 가방과 짐들을 무릎위에 놓고 있거나 아니면 바닥 양 발 가랑이 사이에 놓고 있는 것이다. 이 무더위에 무엇하나 몸에 닿기라도 하면 덥고 짜증이 나는데, 그리고 다리사이 바닥에 놓게 되면 바닥에는 머리카락 등이 먼지에 뒤엉켜 굴러 다니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처럼 옆 빈 자리에 놓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정말 놀랬다. 그래도 한 두 사람 정도는 나 같은 사람도 있는데 말이다. 연령대는 거의 4~50대 정도다. 더운 날씨에 또 깨끗지도 않은 바닥에 가방이나 짐을 놓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빈 자리가 없다면 그 때는 어쩔 수 없겠지만, 39석 자리에 승객은 17명 정도밖에 안 돼, 옆 자리 그 옆 자리까지 모두 비어 있는 상태다. 물론 빈 자리에 놔도 큰 잘못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보던 안 보던 아무도 없는 빈 자리지만, 내가 사용할 수 없는 공간으로 남의 영역을 존중하고 자신의 공간 안에 충실하려는 사람들이다. 작은 일이지만, 희생과 남에대한 배려다. 요즘 사회적으로 아무 이해관계도 없는 남을 해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이 모습은 신선하다. 혼자만의 생각이겠지만 필자도 예의는 잘 지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죄를 지은 것은 아니지만 순간 죄지은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슬그머니 멜빵가방을 끌어서 무릎위에 조용히 올려 놨다. 나에대해 관심도, 보는 사람도 없지만 모른척 또 여기까지 그렇게 왔던 것 처럼 조용히 올려 놨다. 아, 그렇구나, 무심했지만 새로운 깨달음이 신선하게 느껴오는 아침이다. 희망이 있는 아침이다. 기분이 좋다.얘기는 여기서 끝내려 했다.그런데 필자는 시간상 어쩔 수 없이 전철에서 신문의 사설을 읽고 칼럼을 읽는다. 그런데 그 때 한 기사의 제목이 눈에 들어 온다. 바로 "김은경, 연봉 3억 자리 꾸역꾸역 버텨놓곤 尹때 임기 마쳐 치욕?” 이란 제목이다. 시비를 걸자는 얘기는 아니다. 민주당 혁신위원장 김은경은 전 정권에서 임명되어 尹정권에서 임기를 끝까지 마친 사람이다. 끝까지 임기를 지킨 것을 또한 뭐라고 하는 말도 아니다. 다만 파렴치한 양심이 지금 전철안에 있는 사람들의 양심과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 불편함을 감내하면서 자신의 영역안에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폐를 끼치지 않으려 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 배려하고 존중하며 자리를 비어 놓고 있는 그런 마음과, 남이야 어찌 됐던 끝까지 버텨 연봉은 다 타 먹어 놓고도, 치욕스러웠다는 표현이 파렴치하고 가증스럽기 때문이다. 치욕스러웠으면 그만두면 될 일인데 3억원의 연봉은 끝까지 다 타 먹어 놓고 그런말을 할 수 있을까. 양심상 앞 뒤가 안 맞는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분에 대한 다른 기사내용은 여기서는 얘기 않기로 한다.) 국민의 의식수준은 변하고 향상되고 있는데 정치의 수준은 예나 지금이나 수준 이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는 밝다. 그리고 희망이 있어 보인다. 신선한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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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택 칼럼 - < 설익은 민주주의 ><설익은 민주주의> 지난 7.24일 검은 옷과 마스크 차림의 교사·예비교사 약 5000여명이 서울 종로에서 “교사들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에서 2년 차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을 계기로 교권(敎權) 침해 실태를 고발하고 나선 것이다.교사들이 학생들로부터 폭행당하는 일들이 발생되고 있다.지난 6.30일에는 서울 양천구의 한 공립초등학교에서 학생이 담임교사에게 욕설을하고, 무차별 폭행을 가해 해당 교사는 입 안이 찢어지는 등 전치 3주의 상해와 스트레스장애 진단을 받았고, 6.12일에는 부산에서도 초등학교 학생이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교사의 가슴 등을 수차례 발로 차는 등 폭행을해 교사는 가슴뼈 등을 다쳐 전치 3주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이러한 가운데 교사들이 학부모들로부터 "악성 민원에 대한 글로 시달리고 있다" 고 하며 “학생과 학부모 인권을 보호하는 만큼 교권도 보호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여기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7.24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교권 강화와 관련해 교육부 고시 제정과 자치조례 개정 추진을 지시했다. 교사의 극단적 선택의 배경이 되는 학생인권조례 등의 재정비를 주문한 것이다.최근 5년간 교사가 아동 학대 혐의로 고소·고발당해 수사받은 건수가 1,252건에 달한다고 한다. 대부분은 불기소·무혐의 처분이 되지만 교사들이 겪어야 할 부담과 고통은 너무 큰 것이다. 올해 초 전북에서는 ‘화장실 가려면 손을 든 뒤 가라’고 지시했다는 이유로 교사가 아동학대로 고소를 당한 사건도 있었다.서울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의 극단적 선택 배경으로 학생·학부모에 의한 교권 침해 문제가 부각되면서 학생의 자유와 권리에만 치중한 '학생인권조례'가 문제시 되고 있다. 현행 '학생인권조례' 제정은 좌파 교육감 주도로 만들어진 것으로서 학생들의 인권만 강조되고 있다. 뉴욕 '학생권리장전'을 보면 권리와 책임이 분명해 “각 학생의 책임 있는 행동만이 이 권리장전에 명기된 권리의 전제”라며 “이러한 책임을 어길 경우 학교별 훈육 규정에 따른 지도 조치가 이뤄진다”고 명시해, 장전에 언급된 권리엔 책임이 반드시 따른다는 점을 확실히 하고 있다.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과 경기, 광주, 전북, 충남, 제주 등 6개 시도 교육청이 채택 중인 학생인권조례를 보면 하나같이 학생이 누려야 할 자유와 권리, 권리 침해에 대한 구제 항목만 있을 뿐, 학생이 지켜야 할 의무나 타인의 권리 존중에 대한 항목은 일절 없다.두발 및 복장 자유만 보더라도 서울학생인권조례의 경우 “학생은 복장 두발 등 용모에 있어 자신의 개성을 실현할 권리를 갖는다” “학교의 장 및 교직원은 학생 의사에 반해 복장 두발 등 용모에 대해 규제해선 안 된다”는 두 개 조항으로 끝이다. 반면 뉴욕 학생권리장전엔“ ~ 복장이 위험하거나 학습·지도 과정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만 허용된다”고 적혀 있다.또 교내 휴대폰 카메라와 소셜미디어 사용, 엎드려 자는 행위 역시 서울 등에선 학생인권조례상 ‘사생활의 자유’ ‘개인정보 보호 권리’ ‘휴식권’ 조항 때문에 교사가 손을 댈 수 없다. 그러나 뉴욕 학교에서 이런 행위는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즉시 제지할 수 있으며, 불응 시 교사나 교장이 교실 밖으로 쫓아내거나 부모 상담, 반성문 작성, 정학 처분 등 단계별 훈육·지도를 규정에 따라 받아야 한다고 돼 있다.조례 제정 책임자들에게 묻고 싶다. '학생인권조례'를 어떤 이유와 기준에서 만든 것인지. 권리가 있으면 당연히 의무와 책임이 따르는 것인데, 왜 학생들의 권리만 있고 의무와 책임은 없는지. 도로를 만들었으면 도로법규를 만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의무와 책임이 권리의 전제가 되듯이 도로법규는 도로이용의 전제가 된다. 인기와 표만 생각한 설익은 민주주의 때문은 아닌지 묻고 싶다.민주주의는 입에 단 것만 주는 것이 아니라 쓴 약도 먹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편한 것만 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때문에 불편도 해야 하고 때로는 제재와 처벌도 받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균형이다. 균형이 맞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에는 자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의무와 책임이 있고, 인권에는 권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역시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다. '학생인권조례'의 수정이 불가피하다. 조속히 권리와 책임의 균형이 맞도록 수정 보완해야할 것이며, 아울러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에 대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아동 학대범죄로 보지 않도록하는 초중등교육법도 조속 개정해야 한다. '선생님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는다'고 한 말은 어디로 갔는지. 설익은 민주주의와 인권이 오늘을 이렇게 만든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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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택 칼럼 - < 실패한 지도자 >인기있는 지도자가 꼭 성공한 지도자는 아니다. 당장 지지율이 높다고해서 성공한 지도자라고 볼 순 없다. 성공한 지도자는 역사적으로 평가 받을 수 있어야한다. 무섭고 인기 없던 선생님이 나중에 존경 받는 선생님이 되듯이 말이다. 오찬 후, 와이셔츠 바람으로 한 손에 커피컵을 들고 참모들과 함께 청와대 뒷 뜰 잔디밭을 평화로이 거닐 때에는 세상에 이보다 더 인간적인 지도자가 있을 수 있을까, 역사상 이렇게 자신의 권위를 내려 놨던 훌륭한 지도자가 있었을까 하고 생각 했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7.21일자 조선일보 보도에 의하면 문재인 정부가 중국을 의식해 사드의 정식 배치를 미루고 5년내내 임시 배치 했던 것이 확인됐다. 6개월이면 끝나는 환경 평가를 1년 이상 걸리는 ‘일반 평가’를 받도록 하고, 평가협의회는 구성도 하지 않았다.공개된 국방부 문건에 따르면 2019년 12월 3일 청와대 국가안보실 주재 회의에서 대통령 방중에 악영향을 줄까 봐 연내 평가협의회 구성은 곤란하다고 결론짓고 사드의 정식배치 절차를 미뤘다.또 사드 3불(不)이 ‘한중 간 기존 약속’이라고 적시돼 있었다. 3불은 사드 추가 배치를 않고, 미국 미사일 방어체계(MD)에 참여하지 않으며, 한·미·일 군사 동맹을 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그동안 3불이 우리 정부의 입장 표명일 뿐이라던 문 정부의 거짓이 드러난 것이다.1한(限)은 사드 운용에 제한을 둔다는 뜻으로 이것 역시 “사실이 아니다”라고 한 말 또한 거짓이었다.3불(不)은 대한민국의 군사 주권으로 어떤 국가도 개입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런데 중국 방문을 위해 군사 주권을 내준 꼴이 됐다. 군사주권을 다른 나라에 내어주는 멍청하고 무책임한 나라가 또 어디에 있을까. 기가 막히다.또 감사원의 보 해체 결정에 대한 감사 결과를 보면, 말문이 막힌다.환경부는 2018년 11월 보 해체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4대강 조사·평가위원회 구성에 있어 환경단체의 지시대로 4대강 사업을 찬성 또는 방조했던 전문가들은 제외하고, 반대 전문가들로만 조사·평가위원회 위원 43명을 결정했다. 그러니 결론은 처음부터 뻔한 일이었다.더 황당한 것은 위원회가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 활용한 경제성 평가방법이 말도 안 되는 과학적 분석이 아닌 정치적 결론으로 세종보·죽산보의 해체를 하게 됐고, 물관리위원회가 동일하게 최종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왜 그랬을까. 지도자의 가치관이 무엇이고 통치철학은 무엇이었을까.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사드는 북핵을 요격하는 체계다. 그런데 왜 중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건지, 한 나라의 운명을 책임진 책임자로서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겉으로는 주민들이 반대한다는 이유였지만 사실은 중국 눈치 보기였다.지도자는 가치관이 솔직하고 명백해야 한다. 명백하지 않으면 지도자가 될 수 없다. 그리고 그 가치관이 국민의 보편적 가치관에 맞아야 한다. 맞지 않는다면 역시 그 국민의 지도자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지도자는 인기나 지지율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인기는 일에 독이 될 수 있다. 그것보다는 신념과 철학이 있어야 한다. 그 신념과 철학이 오직 국민만을 위한 것이 돼야 한다. 목숨 바쳐 국민을 위해 일 하겠다는 신념이 있어야 한다. 그 신념과 철학은 어쩌면 인기율과는 반비례 될 수도 있다. 인기는 과정일뿐 성과는 역사가 평가한다. 그리고 그러한 신념과 철학이 확고히 섰다면 이제는 결단하고 추진하는 것이다. 일 하지 않으려면 그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다. 국민의 보편적 가치관에, 오직 국민만을 위해 희생하겠다는 신념과 철학이 확고하다면 두려울 것이 없다. 결단하고 추진하면 된다. 거기에는 후퇴가 있을 수 없다. 국민만을 바라보고 국민만을 위해서 일하면 되는 것이다. 좌고우면(左顧右眄)할 이유도 없다. 국민을 위한 일인데 주춤거릴 일이 뭐 있나. 없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지도자의 길이다.그런데 그러지 않고 지도자가 무책임하게 국민의 보편적 가치관이 아닌, 이쪽 저쪽 눈치만 보는, 물에 물 탄듯한, 추진력 없는, 무능한 지도자라면 비참한 지도자가 될 수밖에 없다. 결과가 말해주고 있다. 지도자는 오직 국민만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고 그 일에 무한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그래서 지도자의 책임이 큰 것이다. 일 안하고 책임지지 않으려면 그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다. 지도자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고, 또 해서도 안 된다. 한 나라의 운명이 달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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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남북통일과 행복<남북통일과 행복> 이상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강남구협의회) 대한시니어신문 회장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은 행복의 보편적 정의를 잘 말하고 있다. 그는 '궁극목적 = 최고선 = 행복'이라는 방적식으로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가 행복이라고 주장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한다. '행복은 무엇인가'라는 기준은 주관적이며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행복'은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목적이고 궁극적 목표임에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고 이상형의 이성을 만나 가정을 이루는 것, 여가생활을 누리며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젊은 층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행복의 공식일 것이다. 노년층은 장수시대에 맞게 건강한 정신과 육신을 유지하고, 경제적으로 구애됨이 없이 좋은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생활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행복의 가치기준과 많이 동떨어져 있다. 유엔 산하 자문기구 ‘2022 세계 행복보고서’ 146개국 가운데 ‘한국 행복지수’는 59위였다. 2019∼2021년의 한국 행복지수는 5.935점으로 필리핀(60위, 5.904점)·중국(72위, 5.585점)보다는 높지만, 일본(54위, 6.039점)·그리스(58위, 5.948점)보다는 낮은 59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구매력 기준 국내총생산과 기대수명에서 비교적 높은 수치를 기록했지만, 나머지 항목에서는 낮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만 추려보면 최하위권에 속했다. 젊은이들은 어렵게 들어간 대학을 졸업해도 고용없는 저성장으로 일자리가 부족하고, 베이비붐 세대들은 산업화시대에 축적한 고도의 기술과 경험을 활용할 마땅한 곳을 못찾아서 아까운 능력이 사장되고 있다. 또 여성들의 섬세하고 디테일한 강점들을 활용할 만한 취업 여건도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나라가 평화통일을 이룬다면 개인의 행복도 우리 곁에 한 발짝 더 다가오리라 생각된다. 미국 금융기관 골드만삭스의 분석에 의하면 한반도가 통일되면 2030년 1인당 국민총생산(GDP) 은 4만3천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남한의 자본과 기술을 북한의 풍부한 자원과 노동력에 융합한다면 경제적 시너지 효과가 지대하리라고 보는 것이다. 이렇듯 통일은 남한뿐만 아니라 북한 주민들의 편익을 증진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길이 될 것이다. 독일이 통일 후 유럽의 리딩컨트리가 되었듯이 통일을 이룬 대한민국도 동아시아의 선두국가가 되리라고 확신한다. 광복과 분단 70주년이 지났다. 이제 바람이 있다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이룩해 8천만 남녀노소 민족 구성원 모두가 행복해 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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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택 칼럼 - < 내로남불의 오해 >요즘 사회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단어가 있다. 내로남불이다. 내가하면 로맨스고 남이하면 불륜이다. 로맨스는 정상적 남녀간의 사랑이고 불륜은 부부이외의 남녀간의 관계다. 그런데 이 단어가 잘못 오해되는 경우가 있다. 남녀간의 사랑은 묘(妙)해서 불륜의 관계에서도 당사자들은 그것이 불륜으로 느껴지지 않고 로맨스로 느껴진다. 물론 이성적으로는 잘못인 것은 알고 있지만, 사랑에 빠져 있는한 느끼는 감정은 불륜이 아닌 로맨스로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든 모든 불륜은 잘못이다.그런데 요즘 정치에서 사용되는 내로남불은 좀 다르다. 남녀간의 불륜은 사랑에 마취되어 로맨스로 착각하게 되는 경우이지만, 정치에서의 내로남불은 착각이 아닌 의도적 계획적으로 자신의 잘못은 철저히 합리화하고 상대방 잘못에 대해서는 근거도 없이 사실을 왜곡하고 속임수를 써 헐뜯는다. 그것은 내로남불이 아니라 사기다.근거도 없고 팩트(fact)도 없다. '아니면 말고'식이다. 의혹이 있다면 당연히 확인을 하는 것이 책임있는 행동인데, 그냥 '그렇다더라'하고 던져만 놓는다. 그것은 국민을 속여 이득을 꾀하려는 사기꾼이나 다를 것이 없다. 이런 사람들이 국민의 지도자다. 정쟁은 정당간의 투쟁이다. 그 투쟁의 지향은 국민 이익이다. 그런데 국민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들을 조정하여 합의에 이르도록 하는 제도다. 그러기 위하여 토론과 관용과 비판 및 타협 등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러한 것들은 아무 상관이 없다. 또한 정쟁은 권투 경기와도 같다. 권투에는 룰(rule)이 있고 원칙이 있다. 원칙과 룰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권투가 아니라 싸움판이다. 주먹으로 안되면 연장을 들고 무기를 든다. 그럴경우 피해를 보는 사람은 주변의 사람들이다.정쟁에도 rule이 있고 원칙이 있다. 그런데 팩트도 근거도 없이 무조건 내 지른다. '아니면 말고'식이다. 지친 국민들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 정쟁에서 rule과 원칙이 무시된다면 그것 또한 정쟁이 아니라 싸움판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부끄러운 일이다.그런데 이건 또 무슨 말인가.어느 장관은 국책사업을 백지화 한다고 한다. 물론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절치 못한 표현이다.장관이 무슨 권한으로 국책사업을 백지화 한다는 말인가. 대통령도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국책사업이 어느 한 개인의 사업인가. 어느 한 개인이나, 조직의 결정에 따라 해도, 안 해도 되는 사업인가. 공무원에게는 정당한 일을 안할 권리는 없다. 오직, 해야할 의무와 책임만이 있다.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설득하고 추진해야 할 의무와 책임만이 있을 뿐이다. 다만, 국민들이 원하거나 또 그럴만한 이유와 근거가 있다면 그 때에는 다음 정권으로 이월시킬 순 있다. 그 외의 방법은 없다. 어렵고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을 위해 일을 하지않으면 안 되는 것이 공직자다. 그런데 요즘 공직자들은 공무원인지 아닌지, 국회의원인지 아닌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다. 그런데 다수결에 의해 진실이 감춰지고 거짓이 진실인 것 같이 보일 때가 있다. 그래서 실망스러울 때가 있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과 진실은 언젠가는 드러나기 마련이다. 분명 드러난다. 그것이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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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택 칼럼 - < 아픔의 이유 >세상의 모든 아픔들은 이유 있는 아픔들이고, 시련과 고통 또한 이유 있는 시련과 고통들이다. 절망해서는 안 된다. 시련과 고통 안에서 지혜를 찾고 성숙돼가야 한다. 성숙은 사랑해야함을 깨달아 가는 것이다. 세상에 아픔이 없다면 위로할 일이 없고, 고통이 없다면 감싸줄 일이 없다. 그 것이 선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상관이 없다. 그렇지 않다면 세상은 성숙될 수 없고, 성숙되지 않고는 사랑은 완성 될 수 없다.세상에 가난이 없다면 나눌 일이 없고, 굶는 이가 없다면 베풀 일이 없다. 그것이 선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상관이 없다. 그렇지 않다면 세상은 성숙될 수 없고, 성숙되지 않고는 사랑은 완성 될 수 없다.세상에 버림받은 이가 없다면 보살펴 줄 일이 없고, 병든 이가 없다면 위로해 줄 일이 없다. 그것이 선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상관이 없다. 그렇지 않다면 세상은 성숙 될 수 없고, 성숙되지 않고는 사랑은 완성 될 수 없다. 세상에 실수가 없다면 이해해줄 일이 없고, 잘못함이 없다면 용서해줄 일이 없다. 그것이 선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상관이 없다. 그렇지 않다면 세상은 성숙될 수 없고 성숙되지 않고는 사랑은 완성 될 수 없다.아파 보지 않고는 남의 아픔을 모르고, 고통을 모르고는 남의 고통 또한 모른다. 그래서 아파봐야 하고 고통도 받아 봐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성숙될 수 없고, 성숙되지 않고는 사랑은 완성 될 수 없다.잃어버리지 않고는 잃어버림의 아픔을 모르고, 실패하지 않고는 실패의 아픔을 모른다. 잃어 봐야 하고 실패도 해 봐야 한다. 잃어 봐야 지혜를 얻고 실패해 봐야 깨달을 수 있다. 그러지 않고는 성숙될 수 없고, 성숙되지 않고는 사랑은 완성 될 수 없다. 시련을 겪어보지 않고는 시련의 아픔을 모르고, 좌절해보지 않고는 좌절의 아픔을 모른다. 시련도 겪어 봐야 하고 좌절 또한 해 봐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성숙될 수 없고, 성숙되지 않고는 사랑은 완성 될 수 없다.절망 없이는 희망할 수 없고, 용서받지 않고는 용서할 수 없다. 절망해봐야 하고 용서 또한 받아 봐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성숙될 수 없고, 성숙되지 않고는 사랑은 완성 될 수 없다.세상에 행복과 평화만 있다면, 가난과 질병이 없다면, 고통과 시련이 없다면, 실패와 잘못이 없다면 발전하고 성숙될 일이 없다. 사랑하고 사랑받을 일이 없고, 용서하고 용서받을 일이 없으며, 베풀고 베품받을 일이 없고, 희망하고 인내하고 노력할 일이 없다. 도와주고, 나누고, 감싸 주고, 보살피고, 이해하고, 포용하고, 함께해 줄 일이 없다. 그래서 세상은 성숙될 수 없고 사랑은 완성 될 수 없다.그렇지만 사랑은 완성돼야 한다. 완성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들의 존재 이유고 삶의 이유다. 가난과, 질병과, 고통과, 모든 아픔들의 가치가 거기에 있다. 물론 고통 받는 사람, 아픈 사람은 당장은 힘들고 고통스러울 수 있다. 그렇지만 사랑의 완성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성숙의 과정이다. 과정 없이는 성숙될 수 없고, 성숙 없이는 삶의 의미 또한 깨달을 수 없으며, 사랑은 완성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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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택 칼럼 - < 잃어버린 자(者)의 감사 >< 잃어버린 자(者)의 감사 > 가진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다. 그래서 신(神)께 간절히 빌었다. 그러나 神은 주지 않았다. 대신 지혜를 주었다. 교만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었고, 교만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얼마나 바보스러운 일인지를 알게 해주었다. 아픔을 모르는 것이 교만이고, 고통을 모르는 것이 교만임을 알게 해주었다. 만약 잃어버렸던 것들을 다시 주었다면 그 순간부터 또 다시 교만에 빠졌을 것이고, 물질을 더 믿고 물질에 더 의지했을 것이다. 그래서 영혼은 죄 가운데 병들어 갔을 것이다. 그래서 감사한다. 가진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다. 그래서 神께 간절히 빌었다. 그러나 神은 주지 않았다. 대신 지혜를 주었다. 잃어버린 것들을 버릴 수밖에, 포기할 수밖에, 또는 그대로 다 비울 수밖에 없게 해 주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잃어버린 그것들을 붙잡고 아쉬움에 울부짖고 있을 것이다. 잃어버린 그것들이 자신의 것이 아님을, 진정한 가치가 아님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감사한다. 가진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다. 그래서 神께 간절히 빌었다. 그러나 神은 주지 않았다. 대신 지혜를 주었다.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아팠던 것만큼 아픈 사람들의 아픔을 알 수 있게 해주었고, 고통받았던 것만큼 고통 받는 사람들의 고통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으며, 힘들었던 것만큼 힘든 사람들의 힘듦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픈 사람들의 아픔도 고통도 힘듦도 알지 못하면서 그들을 안다고, 그들을 이해한다고, 그들을 사랑한다고 교만을 떨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감사한다. 가진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다. 그래서 神께 간절히 빌었다. 그러나 神은 주지 않았다. 대신 지혜를 주었다. 세상의 고통도 기쁨도 즐거움도 영원한 것이 아님을 알게 해주었고, 권세도 명예도 물질도 진정한 가치가 아님을 알게 해 주었으며 오직 일용할 양식이면 만족한 것이고 행복인 것임을 알게 해 주었다. 많이 가진 것이 부요가 아니라, 더 이상 욕심낼 이유가 없는 마음의 부요가 진정한 행복임도 알게 해주었다. 그 이상의 것이 의미 없는 것임을, 가치 없는 것임을 알게 해주었다. 그래서 감사한다.가진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다. 그래서 神께 간절히 빌었다. 그러나 神은 주지 않았다. 대신 지혜를 주었다. 예전에는 아픔이 아픔 자체였고 고통이 고통 자체였다. 그런데 아픔의 의미를 알게 해주었고, 고통의 가치를 알게 해주었으며 또한 인내의 의미와 가치를 알게 해 주었다. 그래서 산다는 것이 세상적 가치의 축복과 육신의 만족이 아니라 참고 견디고 버리고 비우며 남을 위해 내어주는 것임을 알게 해주었다. 그것이 바로 성숙이고 완성이며 가치임을 알게 해 주었다. 그래서 감사한다.가진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다. 그래서 神께 간절히 빌었다. 그러나 神은 주지 않았다. 대신 지혜를 주었다.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었다. 이제까지는 사랑의 의미를 잘 몰랐다. 그러면서도 입만 열면 ‘사랑해야 한다’, ‘삶은 사랑의 완성이다’, 라고 하며 많은 말들을 해왔다. 그러면서도 정작 사랑할 줄 몰랐다. 그런데 사랑이 무엇인지,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주었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또한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깨달음을 주었다. 잃어버린 물질을 돌려 달라고 빌었지만, 물질이 아닌 사랑할 수 있는 깨달음을 주었다. 물질의 여유로움보다도 더 큰 영혼의 여유로움을 주었다. 그래서 감사한다. 오늘 하루 주어짐에 감사한다. 맛있는 음식을 더 먹을 수 있게 되어서도 아니고, 좋은 옷을 더 입을 수 있게 되어서도 아니다. 오직, 오늘 하루가 주어짐으로해서 아직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어 감사하고 그리고 아직 감사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어 감사한다. 그렇지 않다면 일상 속에서 사랑하며 살아왔어야 할 삶들에 대해 사랑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고, 감사하며 살아왔어야 할 삶들에 대해 감사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감사한다. 진정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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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칼럼 - < 7월 단상 >7월이다. 7월이 되면 지나온 반년을 되돌아보고, 남은 반년을 어떻게 살까 고민해본다. 벌써 일 년의 반이 지나갔다는 아쉬움보다는 아직도 반년이 남았다는 설레임으로 인하여 7월은 하반기의 시작인 달이니 분위기나 느낌은 상반기에 가깝다. 한편으로 7월은 휴가철의 시작이다. 지금은 산으로 바다로 여행을 떠나지만, 시골에서는 짧은 농한기라 더위를 피하고 휴식을 취하러 녹음을 찾았고, 느티나무, 회화나무, 팽나무 등의 그늘아래서는 늙은이.젊은이 등이 모두 모여서 여론이 집약되고 정보가 교환되는 삶과 소통의 장소였다. 7월의 태양은 강렬하다. 이 햇빛은 대지를 뜨겁게 달구지만, 꼭 자연과 인간을 힘들게 하지만은 않는다. 과일과 곡식은 작열하는 7월의 태양으로 절정기를 맞아 가을의 알찬 수확을 위한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성장을 향한 최고의 정점에 도달하고 내리쬐는 햇볕으로 인하여 과일의 당도는 높아만 가고 오곡백과는 풍성을 예비한다. 그래서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계절이다. 매년 이맘때 뻐꾸기 울음소리가 지쳐갈 때면 매미 소리가 온 산하를 교향곡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칠월의 폭염과 녹음의 무게를 감당하기엔 뻐꾸기 소리로는 아무래도 역부족인가 보다. 사계절 모두 각각의 매력이 달라 모든 계절을 좋아하지만, 그래도 그중에서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여름'이다. 일년 중 가장 자신의 색을 진하게 뽐내는 계절. 어두운 걸 두려워해서 밤보다는 아침을 더 좋아하지만 어쩐지 여름 밤은 낭만이 있어 무섭기보다 애틋한 느낌이 든다.